누구나 정신생활에서 자기 경험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연관관계를 배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신병적 인격체와 부분적으로 심리학적 설명을 요구하는 정신병을 분석한다. 이해하는 인식이 풍요로울수록 개개의 사례에서 심리학적 설명을 동원한 분석이 섬세하고 정확할 수 있다. 일반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에서도, 그것이 불가능하든 또는 너무 어렵든 간에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이해심리학의 연관관계를 유지하고 체계적으로 다루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끊임없이 우리 언어를 통해 일반화되어 묘사되는 이해 가능한 연관관계는 진부한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다. 효과적으로 이해 가능한 것은 구체적 형상을 띠며 시도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 우리는 체계적 지식을 추구하게 되며 이해 가능성의 체계를 세우는 일이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 속에서 이해의 원칙에 대해 방법론적 질서를 획득하려고 한다. 우선 우리가 어디에서 이해하기의 풍요로움, 유연성, 깊이를 획득할 수 있는지를 기억해보기로 하자. 모든 연구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인간으로서 수준의 문제이다. 이해의 창조적 업적은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창조적 위대함은 위대한 시인과 예술가들을 이해하는 데서 또다시 반복된다. 셰익스피어, 고대 비극작가, 그리고 도스토옙스키 등의 현대 작가들에 대한 평생에 걸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서만 내적 관조 이해하는 훈련, 형상과 상징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들을 통해 구체적 한순간을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성찰을 통해 정신 과학의 전 영역에 걸쳐 감지될 수 있다. 연구자가 기본 특징을 얼마나 명료하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이해의 올바른 척도와 가능성의 테두리, 범위가 정해진다. 나의 이해의 원천을 어디에서 찾고 확인하는가에 따라 이해심리학으로서의 연구방식이 정해진다. 이를 통해 내가 진부한 단순화와 합리적 도식에 얽매이는지 아니면 인간의 의미 있는 현상을 이해하게 되는지가 결정된다. 우리는 연구자에게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당신의 심리학의 원천을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위대한 시인들도 위대한 인간들의 현실교감을 통해서만 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도 흥미롭고 본질적인 성격을 획득하는 지평이 창조된다. 방향 설정이 범상한 것 혹은 비범한 것, 순수한 것 그리고 충족된 것에 의해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이해하기와 각기 이해된 대상에서 성취될 수준이 결정된다. 신화적이며 시작 형상의 세계 이외에도 이해를 위해 정신적 갖고 가 담겨 있는 특별한 저술들이 있다. 그 기초를 이루는 것들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스토아학파의 고대철학이라고 하지만 서양에서 정신 이해의 총체적 세계가 제시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와서이다. 그 후 많은 사람이 잠언의 형식을 시도하였다. 특히 프랑스의 몽테뉴, 라브뤼예르, 상표를, 보브나르그, 라로슈푸코가 그들이다. 이들 모두를 능가하는 위대한 사람이 파스칼이다. 체계적인 업적은 오로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국한된다. 전적으로 독특한, 모든 이해심리학에서 위대한 인물은 키르케고르와 니체이다. 모든 이해의 밑바탕에는 인간존재의 초안, 기본 패턴이 위치한다.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인간의 본성이 어떠하며 또 어떠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다소간 분명한 의식이 깔려 있다. 심리학자는 그러한 기본 패턴들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으나 연구자로서는 그중 어떤 것도 유일하게 참된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오히려 연구자가 모든 패턴을 통해 무엇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지 배우게 하여 경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 옳다. 이해할 수 있는 연관관계의 총체성을 모든 방식을 통해 발전시키고 제시하는 것은 정신병리학의 과제가 아니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의식하고 위대한 유산과 자신만의 인생 경험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세 계속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훈련하는 것만이 지레짐작으로 단순하거나 혹은 복합적인 도식화에 구속되는 허상을 피하는 길이다. 정신병리학의 진정한 문제는 의식 외적으로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인 특정 기제를 통한 이해 가능한 것의 실현이다. 그런데도 정신병리학에서 드물고 비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관성 들을 구체적 사계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은 독자적 과제이다. 이 과제는 자연과학이나 인과론적 인식에서 독립적이다. 또한 이 과제는 세심하고 철저한 방식으로는 거의 시도되지 못하였다. 인과론적, 자연과학적 인식을 유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일반적 경향은 이런 연구의 자립성을 명료하게 의식하지 못했으며 심리학적 설명을 도입함으로써 객관적 연구를 왜곡하였다. 이는 자연과학에서 이론적 구조물 때문에 순수한 이해가 왜곡되는 것과 같다. 가치 있는 연구는 비정상적 성생활 분야, 개별범죄 사례에 대한 감정 평가, 우수한 정신의학적 사례보고 등에서 이루어졌다. 정신병리학에서 정신병질을 묘사할 때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연관관계를 의식시켜주는 것이 정신의학의 특별한 의무라 해도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관찰되며 일상적이고 실효적인 이해를 위한 장치에 속하는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별적 연관관계가 존재한다. 이해할 수 있는 연관관계에 관한 주석, 이해할 수 있는 무한한 세계로부터 우리는 이 장에서 다만 몇 가지 가능성만을 지적하였다. 이해하기의 몇 가지 기본 양식이 지난 수십년간 무작위로 일상화되어버렸다. 우리는 위에서 언급된 자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연관관계를 선택해서는 안 되기에 정신병리학에서는 오늘날 정신의학자와 정신 치료사에게 일반화되어 있는 견해를 방법론적으로 의식화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 걸맞은 이러한 견해는 이해하기에 관한 한 오늘날 가장 수용할만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견해는 아마도 항상 영원히 보편타당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 특유의 실정에는 적절할 것이다. 모든 이해하기는 자신의 세계 속의 인간상을 전제함과 동시에 이를 발전시킨다. 오늘날의 이해하기도 마찬가지다. 작금의 인간상의 전제들에서 본질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 내적. 본질적 체험 가능성의 빈곤화, 이러한 결핍을 전통의 습득을 통해 해소하려는 의도, 과격한 갈등에 대한 지식, 기본적 태도의 불안함. 무종교성과 강압적으로 채택된 상징과 구원론에서의 신앙적 엄숙성의 경향, 우리가 현재의 유효한 견해들을 재현하면서 세운 근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실용적 이해하기를 위해서는 이해하기의 위대한 역사적 전통에서 그 배경을 습득해야 한다. 동시대의 시도를 우리 의식의 전면에 위치시킬때라도 이런 근원과 척도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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